월별 글 목록: 2026년 3월월

냄비에 담겨저 냉장실에서 일주일 지난 카레

를 살린다. 생수를 조금 붓고, 일단 가스불 최약으로 2-3분간 ,,그리고 물을 조금 더 붓고 불을 좀더 올려 끊인다. 하얀 쌀밥에 부어 김이랑 속초식 황태채 무침이랑 먹었다. 주말 아침 겸 점심이다.

갑자기 ‘자살’이란 것에 대한 생각이 났다. 기본적으로 자살의 수백만년간 발달 진화해온 우리의 유전자..그 유전자 이기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다소 차원이 높은 형이상학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여기서 지능은 꼭 학교 공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학교 공부에 최적화돤 아이큐는 100~115정도라는 연구도 있다.

그 본능에 반하는 행동…어쩌면 이성이 100% 지배한 행동..그것의 중심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럽다는 것은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때 생긴는 의식이다. 카레 살리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

주말아침 영화 그리고 젓갈공장, 비지니스

토요일이라…아침부터 바쁘다…평소보다 더 바쁘다기 보다는 동일한데도 맘은 더 바쁘다.

후딩이 사료를 맥이고, 물을 뜨고,,물론 그 전에 후딩이 밥그릇과 물그릇을 깨끗이 씻는다..뜨거운 물을 끓이고,,,,면역 억제제 한 알,,,스테로이드 1봉지를 사료에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 스테로이드를 녹인 후에..냉동실에 밥그릇을 2분 정도 넣어둔다.

그 사이에 어제 저녁에 나온 그릇 설겆이를하고 밤새 축축해진 후딩이 대소변 패드를 걷는다. 걸레를 2장 빨아서 패드 밑을 깨끗이 닦고,,나머지 걸레 한 장으로는 부엌 바닥 마루를 훔쳐낸다.. 축축한 배변패드를 비닐봉투에 넣고, 유기EM액을 조금 분무한 후에 단단히 묶어 쓰레게 봉투에 넣고 동시에 쓰레기 봉투를 꺼내서 입구를 스카치 테잎으로 봉하고 현관 앞에다 내다 놓는다. 휴….

싱크대 하부장에서 새 쓰레기 봉투를 꺼내어 다시 휴지토에 넣고 재빨리 믹스 커피 2봉지를 머그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대나무 잣가락을 한 개 꺼내어 휘휘 저어둔다

주사기, 캐닌슐린, 알콜소믈 준비하고 정확하게 10눈금을 후딩이 등쪽 피하에 주사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서 후딩이 혈당을 체크하고 기억해 둔다..두 시간 내로 혈당수치가 내려가야 한다.

커피 머그를 들고 책상에 앉았는데 익숙한 화면이라 문구가 보여 클릭을 했더니 예전에 봤던 영화 소개 였다.

일본의 한적한 시골마을 한 청년이 흘러 들었는데,,오징어 젓갈공장에 취직을 한다..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참 감독이 카모네 식당,.,,그 헬싱키 배경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2022년 9월인가…엄마 아부지랑 강원도를 갔다..고성,,간성 통일전망대 까지…나중에 엄마가 바닷가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했다..속이 시원했나 보다.

7번국도를 타고 가는데 젓갈판매,,명란젓..하는 상점간판이 보여 따라 내려갔더니…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다소 조금 큰 젓갈 가게가 보였다..주차를 하고…명란젓을 좀 달라고 했다..한 봉지에 만원인가 그랬던 것 같다. 양은 꽤 많았다.

종기, 정은 것도 한 봉지씩 챙겨 나왔던 기억이 있다..명란젓은 냉동고에서 얼어 있었는데..그 냉동고의 분위기도 그렇고 가게 전체의 공기도 그리 깔끔하다,,그런 느낌은 주지 못하는 그냥 시골 동네의 할부지 할머지 운영 가게였다.

갑자기 명란젓,,,젓갈 비지니스를 하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 깨끗하게 깔끔하게 친절하고 값싸게 맛나게..그러면 안 될리가 없을텐데 마리다..그 할부지 할머지 잡으로 강원도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

10억을 받아도 안 나간다.

유연한 근로계약이란 것이 있다.유연…그러게 유연…유연이 나쁜 의미는 아닐 것이라.”유연한 근로계약”은 긍적적인 것으로 보인다.

계약 자체가 그 성격을 고려해쓸 때 유연하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계약서 대로 하면 유연할필요도 무연한 필요도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다. 당연히 계약은 법을 기초로 맺어지는 것이니, 근로계약의 기본은 노동3법…그중에서는 근로기준법을 기초로 한다. 문제는 이 근로기준법이 나라별로 문화적 환경 등등의 이유로 다 다르다.

핵심은 사용자의 근로자 해고 가능 여부이다. 간단하게 예기하면 미국은 해고가 가능하고,,일종의 계약의 파기..정도…우리나라는 몇 가지 요소를갖추지 못하면 해고는 불가능한데…그 몇 가지 요소가..사실상 맞추기는 어렵다. 만약에 그 요소를 맞추는 기업이 있다면,, 근로자가 알아서 먼저 떠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서 근로자의 해고가 가능하냐..? 이것이 핵심이다. 사용자, 즉 기업들은 이것을 원한다. 하지만 근로자에게는 너무나 삶의 큰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 현재는 국가가 나서서 일정수준으로 보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해고가 가능하다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큰 회사들은 일종의 위로금을 지급한다. 이 위로금은 산업별로 암묵적인 기준이 있는데 보통은 6~24 많ㄱ는 36개월 정도의 월급을 지급한다. 그 외에 추가적이고 부수적인 혜택, 예를들면 가지고 있는 주식 옵션의 즉각적 전환 등등..이 있는데 그것은 일단 생략하겠다.

물론 미국에서도 작은 회사 혹은 개인 사업자에게 고용이 된 경우에는 이런 혜택을 받기는 어렵다..그냥 내쳐지는 경우가 많다. 거시적인 국가적 관점에서는 그래도 많은 수의 근로자를 보호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붇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정 수준의 금전을 지급하면 근로계약은 언제든지 해지 할 수 있는 걸로하는것이 현재 상황을 고려하고 짐지워지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을 때 맞는 방법이 아닐까 셍각된다. 돈이면 다냐? 뭐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리고 회사를 나서기를 꺼려하는 근로자들의 경우 경제적 문제외에도 ..그냥 변화가 싫고 두려워 결정을 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다. 10억을 준다고 해도 못 나가겠다고 한다. 이런 건 국가도 사용자도 어떻게 할 수가 없긴하다..물론 전직 서비스를 퇴사자 패캐지에 포함시켜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회사를 떠나는 한 해결되지 않는다.

24~36개월치를 지급하자…직전 3개년 회사 실적에 근거해서 아예 몇 개월로 정하자.

그래야..채용도 신중해질 것이고 해고도 신중해질 것이고….술 먹다 아는 지인 입사시켜 달라는 청탁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받지 않을 것이다.

변화가 두렵긴 하지만 자존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근로자가 버티다 보면 막판에는 와르르 무너지고..심지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법으로 정하자..회사 실적에 따라서 24~36개월 치의 월급을 지급하면 언제나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 지금 시점이라면 기업도 동의할 거시고,,근로자들도 점차 세대가 바뀌고 있으니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로 더 이상 고용의 유연성 때문에 뭘 못 한다는 말이 나오지 못하게해야겠다.

조선왕 이 아무개

생각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가 부르는 조선왕들의 명칭,,즉 영조,,세조,,단종 등등이 묘호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묘호란 죽은 후에 사자의 묘지에 올리는 일종의 호, 명칭이다. 즉 살아서는 그렇게 부를 수도 불리울 수도 없었다.

공식적인 외교문서에는 조선왕 이 아무개로 적었던 것 같다. 바로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이유는 왕의 책봉부터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일종의 공신의 관계로,,중국의 입장에서는 일개 지역의 영주,,혹은 제후정도로 무게를 두었다.

이런 것은 꽤 일관성이 있었는데….그 훨씬 이전 부터는 동쪽의 오랑캐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동안 이런 내용들은 단 한번도 언급이 되지 않는다..자랑스러운 역사만 언급이 된다. 신라는 당을 끌어들여 한반도를 정리했고, 인조는 청나라 황제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번 조아렸다. 일본은 14-5세기 이전부터 생산량과 세수의 관점에서 부유한 나라였고, 18세기에는 전 세계 5-6위…19세기 접어들어서는 서양 미술사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 초에는 세계 1위의 강대국 미국과 전쟁을 하게된디ㅏ.

굳이 부끄러운 역사를 보기보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는 것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우리가 늘 주장하득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자랑스러워 하고,,부끄러운 역사는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난 내 나라의 역사가 많이 부끄러운데,,그중에서도 최근에 정말 수치스러운 부분은 19세기로 넘어 오자 전국민의 7-80%가 노비신분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나다 그것 보다는 조금 덜 부끄러운 것은 한 번도 진정한 혁명이 없었다는 것. 하긴 그 혁명의 프랑스도 200년이 지나니 저꼴이 되어버렸으니..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정육점 냄새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어느 동네에나 가게 앞의 빨간불을 켠 진열대가 인상적인 정육점이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정육점은 실제로 고기가 그 진열대에 걸려 있었고, 장사가 변변치 못한 정육점은 그냥 고기가 걸려있지 않고 비워져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동네 정육점은 그 빨간색 불을 켠 진열대가 비워져 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사실 부산이라는 지방은 그리 저녁 밥상에 흔히 말하는 육고기가 잘 오르질 않는다. 갈비는 설날이나 추석 정도에 먹는 음식 이었고, 소고기국,,일종의 육개장을 먹는 정도…닭고기, 돼지고기는 잘 먹지를 않는 것 같다..어쩌면 우리집만 그랬을지도 모른다…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은 기억이 겅의 없다. 삼겹살을 처음 먹어본 것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할아버니는 돼지고기는 “잘 먹으면 본전”이라고 말씀하셨다. 돼지국밥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했다. 어려서 간혹 엄마가 돼지고기 소금구이를 해줬는데,,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일본식 이었다..그런데 난 먹지를 못했다..입이 짦아서 인지는 몰라도 난 그 냄새가 그렇게 싫었다..군대를 가기 전까지 난 돼지고기 냄새를무척 싫어했다.

정육점엘 들어가면 뭔가 비릿, 거북한 냄새가 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물성 지방이 산화 부패하는 냄새 같기고 하고…어느 정육점이나 항상 그랬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 보면 고기를 썰던 육절기나 칼 등의 위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난 그 냄새가 그렇게 싫었다.

어쩌다 할머니나 엄마를 따라서 시작을 같이 가면,,,시장 입구쪽에 돼지 머리나 내장 순대등을 삶고 찌고해서 파는 가게들이 있었는데..난 항상 다닐 때 마다 숨을 참았다.. 숨을 꼭 참았다..그 냄새가 그렇게 싫었다. 지금도 비슷한 냄새가 나면 조금 거북하기는 한데..그래도 돼지국밥, 순대국밥을 먹기는 먹으니…꽤나 좋아진 편이다.

어릴 때 어무이가 소고기 곰탕을 끓여줘도 잘 먹질 않았던 것 같고…아들 보양시킨다고 장어탕을 끓인 적도 있었는데..난 그 탕을 한 그릇 마시면,,무슨 보약 먹듯이..돈을 천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지금은 설렁탕은 나의 최애 메뉴중의 하나가 되었고, 해장국도 곧 잘 먹는데…주로 소고기를 넣어서 만든 것을 좋아한다.. 돼지고기로 만든 것도 먹기는 먹지만..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냥 먹어야 할 경우가 생긴다..찾아다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코스트코에서 아롱사태를 사다가 수육을 만들고 곰탕을 끓인 적이 있다..무슨 신성한 국물를 만들겠다고,,앞에서 한참을 기름을 걷어내고 맑디 맑은 육수를 만들고 파를 쑹쑹 설어넣고 먹었다. 핵심은 육향이다….

90조 잭팟에도 ‘계약자 배당’ 눈감은 삼성과 당국 [왜냐면]

이한상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국제공익감독위원회 위원

40년 전, “투자 이익의 90%를 배당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유배당 보험에 가입한 148만명의 계약자들이 있다. 삼성생명은 이들의 보험료로 당시 5천억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였다. 현재 약 90조원, 무려 180배에 이르는 잭팟이 터졌다. 그러나 40년간 계약자들에게 배당한 총액은 3조9천억원에 불과하고, 2022년의 마지막 배당금은 고작 145억원이었다. 삼성생명은 “이제 줄 돈이 없다”고 말한다.

2010년 삼성생명 상장 당시 계약자들이 자기 몫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주식 매각 시점은 회사와 주주의 판단 영역”이라며 채권자인 계약자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당국은 여론 무마용으로 ‘계약자 지분 조정 부채’를 내놨다. 가상으로 주식을 다 처분할 경우 이익의 3분의 1을 계약자 몫으로 장부에 표시하라는 것이다. 주식을 팔 생각이 없으니 계약자에겐 공수표요, 회사에는 면죄부였다.

2023년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었다. 핵심은 “실제로 지급할 가능성이 있는 돈만 부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주식을 팔 계획이 없으면 줄 돈도 없으니 보험부채를 ‘0원’으로 기록해야 한다. ‘안 팔고 영원히 배당하지 않겠다’는 삼성생명의 속셈이 재무제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소송과 삼성그룹 총수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궁지에 몰린 삼성생명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수표 부채라도 유지하는 게 낫다”는 해괴한 논리로 국제기준 적용을 거부했다. 이른바 ‘일탈 회계’다. 생명보험협회를 앞세워 16개 생명보험사 전체가 집단으로 2년 연속 국제기준을 거부하도록 회계 흑역사를 썼다.

예고 없던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지분율이 올라간 삼성생명은 지난해 삼성전자 주식을 불가피하게 일부 팔아야만 했다. “절대 안 판다”는 전제가 무너지자 일탈 회계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금융당국도 지난해 12월 일탈 회계 중단을 명령했다.

삼성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재무제표에서 과거의 공수표 부채들은 모두 회삿돈인 ‘자본’으로 변했다. 반면 유배당 계약자에게 줄 보험부채는 결국 ‘0원’이다. “돈 굴려 3~4% 벌어봐야 (보험 기대수익률에 따른) 지급 이자가 7%라 매년 1조원 손실이다. 팔지도 않겠지만, 팔아도 못 준다”고 주장한다. 삼성생명 홍보팀의 회계 주술, 만트라다.

이 주장은 엉터리다. 첫째, 손실은 이미 장부에 반영되었다. 이를 재활용해 삼성전자 주식 매각 이익과 상계하겠다는 것은 이중 계산의 눈속임이다. 둘째, ‘보험부채 0’은 하늘이 두쪽 나도 주식을 파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현실은 작년에도 올해도 이런 가정이 틀렸음을 확인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삼성생명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삼성전자 매각 이익을 주주 배당 재원에 포함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줄 수 있는 돈을 계약자에게는 외면하면서, 이재용 회장과 삼성물산 등 대주주에게는 아낌없이 퍼주겠다는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사슬’에 있다. 현행법상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총자산 350조원의 약 3%인 약 10조원 이상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법률을 위반하며 취득원가 5천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특혜성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 소비자의 자금이 오너 일가의 지배 수단으로 전락한 채, 금산분리 원칙도 148만 계약자의 재산권도 부정되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 자산의 거의 20%가 삼성전자 단 한 종목에 집중되어 있다. 반도체 사이클의 부침에 따라 회사의 건전성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기형적 구조지만, 경영진은 총수의 지배구조 사슬을 지키느라 입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가장 소름 돋는 사실은 148만 유배당 계약자 대부분이 70~80대라는 점이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배당 청구권도, ‘연간 1조원 손실’도 함께 사라진다. 90조원은 주주 몫으로 이재용 본인과 일가의 승계 재원이 된다. ‘못 주는 것’이 아니라 ‘안 주는 것’이고, 계약자들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방 안에 코끼리를 두고도, 정치권과 당국은 “삼성이 잘 돼야 나라가 산다”는 논리로 외면해 왔다. 계약의 이행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이며 금융기업 수탁 책임의 근간이다. 40년 전 고객과 맺은 계약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지켜져야 한다. 삼성전자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지금, 늦었지만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96607

한 백년 아니 2백년 전의 한국과 일본

요즈음,,조선시대 서민…그니깐 양인의 생활,,삶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기웃거리고 있고,,자연스레 같은 시대 일본서민의 모습도 궁금해서 찾아보는 중이다.

일단 놀라운 것은,,조선말기…노비의 비율이 전체인구의 70% 많게는 85%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니…조선 말기의 서민의 삶은 그냥 노비의 삶이었다. 사람이 아니라..그냥 객체..물건.

우리가 아는 설날 떡국,,,연 날리기…이런거..모두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의 서민문화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예전 조선시대 그림에서 연날리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곰곰 생각을 해보면,,,옷 만들 실도 없었는데,,무슨 연줄로 쓸 실이 있었겠는가… 떡국을 먹는 풍습,,,동지팥죽?쌀도 보리도 없는데 팥이 어디? 암튼 그렇게 비팜했던 조선시대 서민아니 노비의 삶이었나 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불고기,,식혜(단술)…머 곳감..팥죽…김초밥..연하장…이런 거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외할머니와 큰 이모는 그러 것들을 잘했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그냥 괜찮은 집안 규수들이었나 보다.생각보다 일본 스러운 문화가 많았다..

중국 서민들의 벽돌집에서 산 것 같고..일본 서민은 좀 춥긴 하지만 나무로 지은 이층집에 산 것 같긴한데…조선시대 서민의그야말로 개돼지 처럼 산 것 같다…어릴적 조금 시골로 나가면 그떄 까지도 흔히들 말하는 초가집이 있었는데..흑으로 대충 벽을세우고 지붕을 짚으로 올린..그야말로..’우리’였다..

어린 시절 기차의 추억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기차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무더운 여름날 통일호에서 사 먹던 계란일 수도 있고, 난생 처음 타본 새마을호의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 혹은 우등열차가 천안부근을 지날 때면 판매원이 외치던 ‘호두과자’ 소리의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은 해운대에서 번화가 쪽으로 기차역으로 약 4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다. 낮은 아파트와 주택이 뒤섞인 동네의 저쪽 한켠에서 기차가 다니던 선로가 있었고, 그 선로가 크게 회전을 해서 직전코스에 들어설 때 즈음이면 기차역 “동래역”이 거기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로 기억이 된다. 여름이면 가족이 해운대로 해수욕을 한 번씩 하러 갔는데,,아마도 여름방학기간 동안 딱 1번씩 갔던 것 같다. 그런데 개구장이 국민학생이 바닷가 수영을 하고 싶은게 1년에 딱 1번일 뿐이겠는가.

친구들과 간 적도 있고 혼자 간 적도 있다.

동래역에 가면, 일단 그 큰 문을 열고 역사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매표소,,정면에서 개찰구가 있었고 오른쪽에서 대기하는 길다란 나무의자가 놓여있었다. 역사가 크지는 않고,,그냥 일반 주택크기로 느껴졌는데, 나중에 커서 가보지 엄처나게 작은 역사였다.

문을 열고 입구에 들어서서 일단 좌우를 살핀 후에, 왼쪽으로 가서 표를 산다. 목적지는 해운데..요금은 통일호 기준으로 110원? 이었던 것 같다. 돈을 내밀면 딱딱한 분홍색의 마분지에 인쇄가 되어 있는 기차표를 준다. 한 번 만져본 뒤에 주머니에 집에 넣는다.

선로의 플랫폼에 나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가 들어오면 신호는 일치감치 파악이 되는데,,선로에서 철이 길게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스윽~~슥~~철~철~

그 소리가 들리고 이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검은색과 주황색을 뒤집어 쓴 기관차가 보이기시작한다.

거대한 쇳덩이 바퀴에 브레이크 패드가 닳는 소리가 날린다 미처 기차가 서기도 전에 길다란 손잡이를 붙잡고 올라탄다 하지만 자리로 가지는 않는다.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이윽코 느릿느릿 힘겹게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통로의 문에 매달려 바같 바람을 맞으면 간다. 자유를 느낀다. 자유..뭐가 그리 부자유스러워을까? 그 바람이 자유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도착하면 기차가 미처 서기도 전에 뛰어 내린다. 가끔은 그 뛰어내림의 시기가 너무 빨라 땅에 발이 닿자마자 넘어지기도한다.

휠거머니 펼쳐진 콘크리트 플랫폼 위로 아지랭이가 피어오르고 한여름 햇볕아래 달아오른 철로에서는 한증막의 열기가 피어올라 얼굴을 덮친다. 조금 비릿한 기름냄새도 같이 콧구멍을 덮는다.

해운대역은 고요하다. 특히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엄청 고요하다.여름의 한가운데서는 ..역에서 바닷가로 이어진 길은 장사치들과 사람으로 넘쳐난다. 기억에 어떤 사람이 맥주병을 꺠고..그 병으로 어떤 사람을 찌르려 하던 모습도 생생하다..싸움판이었다.

역앞에 광장이 있고..그 앞의 상점가 혹은 그렇게 말하기도 민망한 거리를 지나면 바닷가가 보이고 이내 발은 모래를 밟는다. 바다다.

2026년 3월 13일 금요일 매출액

이전에 한 번 얘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이 살아가는,,밥을 먹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현재 나는 물건을 판다.

어제 매출액을 한 번 정리해보자. 금액이 큰지 작은지는 모르겠다.그냥 정리를 아침에 하고 싶어.

아마존 $334 / 484,300원

네이버 257,220

이베이 $36.02 / 52,229원

쿠팡 31,373

옥션 /지마켓 11,950

총 837,072원

목표의 약 절반 수준이다..내 목표는 1,500,000/일 이다. 왜 150만원을 목표로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불가능한 금액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존은 위로 약 100% 상승의 가능성은 있어보이고,,이베이는 250~300%..가능성..물론 영업이익률이 좀 낮은편…

쿠팡 옥션 지마켓은 그냥 사이드고,,네이버는 현재 유지가 목표다…

팔 수 있는데 까지 팔아 보자..

한화오션 채용공고

아침에 여기저기 글을 읽다,,한화오션 채용공고를 보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한화오션이면 예전의 대우조선이아닌가.

지금부터는 거짓말이다.

난 대우조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뻔 했다. 1999년에는 IMF의 여파로 대기업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았는데, 그중에 그나마 채용 흉내를 낸 곳이 대우랑 삼성이었다. 물론 정규직은 아니고..일종의 인턴이었다. 1년짜리 인턴인데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리라 예상은 했지만…삼성에 들어간 사람들은 정규직이 되었고, 그룹공채 39기? 대우에 입사한 사람들의 대우의 몰락과 함께 그렇게 사라졌다.

대우의 인턴 입사발표는 1998년 12월 이었던 것 같다..입사결정..일종의 합격통지서와 함께 연수원 입소,,그리고 해외산업현장 연수 등의 계획이 적혀 있는 서류뭉치 한 봉지가 배달되었다.

나는 베트남의 대우건설 현장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고민의 고민을..

대우는 연대 분위기가 강한 회사였다. 김우중이 연대 출신이기도 했고, 주변의 핵심인물은 모두 연대 상대 출신이었다. 좋은 학교니 객관적 측며네서는 1차적으로는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내가 연대를 다니지 않는 다는 것….

난 기업에서 크게 되고 싶었다..장난 삼아..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홍콩에서 저녁은 싱가폴에서 먹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실제로는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서울-홍콩-뭄바이…

1월 어느날..삼성에서도 합격자 발표가 났다..내 이름도 있었다.. 2월 초 용인연수원(창조관)으로 입소하라고 했다.

머 선택의 고민은 없었다. 그렇게 짐을 싸고,,,용인으로 출발했다.아니 동대문 어디선간 모여서 전세버스를 타고 갔던 거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

입사를 해서 회사 배치를 받고 보니 해당 회사는 고대판이었다…아니 그당시 90년말 200년 초는 삼성자체가 고대판 이었다.

1999년 2월에 삼성입사를 하고,,,전기전자부문에서 근무하다 2000년 4월에 퇴사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삼성에서의 1년은

내 직장경력의 큰 자산이었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유는 나중에 한 번 적어 보겠다..일종의 양심적 측면에서의 고민이 있었다.

나오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잘한 결정…아니 운이 좋은 결정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