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5년 11월 29일

카뮈-이방인-실존주의

제목으로 사용한 3개의 단어 카뮈-이방인-실존주의…이 세 개의 단어는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어도 적잖게 어울리지만, 어울린다는 의미는 상호작용이 활발하고 연관성이 많다는 얘기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품질 좋은 네오디움 자석이 금속 물체 끌어 당기듯이 다른 2 단어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3개의 단어에 관심이 있거나 그와 연관된 책 혹은 글귀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말이다. 말이 좀 어려운데…나의 생각은 3개의 단어가 늘 붙어 다닌다는 느낌.

“이방인” 부터 먼저 들여다 보면, 카뮈가 프랑스 사람이니, 정확하게는 그는 프랑스가 지배하던 아프리카의 알제..알제리? 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원제목이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L’Étranger” 이다. 영어로는 “The Stranger”. Sting의 “English man in New York”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I’m an alien”이라는 가사가 있다. 여기서도 번역을 “이방인”이라고 했는데. 나의 생각은 둘은 똑같은 이방인이 아니다. 갑자기 무슨 얘기냐? 실존주의에서 스팅의 노래 가사는 왜 나오냐? 라고 할 수 있을 텐데..그 세 단어가 나오면 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상념중의 한 가지이다.

스팅의 노래의 가사의 의미는 이방인 이라기 보다는 외계인 혹은 종이 완전히 다른..어떤 존재..그런 의미로 스팅이 표현하려고 사용한 것으로 나에게 보이고….그러니 이방인이라는 번역은 꽤나 부적절하다. 카뮈의 이방인은 같은 모양을 하고 같은 생리, 생명활동을 하는 동족의 사회에서 조금 내버련진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그래서 잘 어울릴 수 없는 그런 느낌의 존재인…이방인이라는 번역이 적절해 보이긴 하다.. 그런데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중에 “Outsider”라는 단어도 있으니..이것도 보통 이방인으로 번역이 된다. 이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책은 읽고나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비교적 일찍 엷어지는데, 그래서 생각이 잘 안 나면 2번 3번 읽는다. 카뮈의 이방인은 조금 다른데, 그래서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이 기억의 부분은 아마도 평생 잊혀지기가 어려운 그런 강렬한 기억이 아닐까?

어머니 장례식에서의 담담하던 그

그가 오늘 거리의 아파트에서 그저 그렇고 평범한 생활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바닷가로 친구들과 놀러 가서 사람을 죽인 것

그래서 교도소에서 지내다 사형을 당한 것

어쩌면 위의 4 부분이 이 책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카뮈는 정말 뭔가 강렬한 느낌의 의미를 잘 전달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왜냐면 내용을 싶게 잊어버리는 멍충이에게 위의 4가지를 강렬하게 남겼는데 그게 그 책의 전부라고 하면 말이다.

카뮈의 이방인이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럼 실존주의는 뭐야? 나에게 이 부분은 조금 약한 고리다. 왜냐면 두 개의 연관성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글을 읽으면 “아,,그렇구나…그렇게 연관이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지만..이내 곧..”그러게, 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품일까?” 라는 의구심이 다시 싹튼다. 결론은 실존주의가 조금 어려운 개념이다.

실존주의 영역을 한 부분을 카뮈가 담당을 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 허무주의와 부조리 그리고 그에 대한 반항과 반항적인 삶…이 반항은 흔히 말하는 반항이라기 보다는, 그 허무와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사는 것이 거기에 대한 반항이라고 여겨진다..나의 개똥철학이다..허무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즐거운 것을 찾아 즐겁게 사는 것..이것이 곧 반항인 것이다. 여전히 이것과 이방인의 뫼르소의 삶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그러나 누구의 강의를 듣거나 이를 설명한 글을 읽는 다면 곧 나는 이해하개 될 것이다..음,…지나친 말장난을 용서하기 바란다..요지는 연관은 분명 있다는 것..내가 이해하던 못하던..

추가로 한 가지 더하자면..나는 분명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뮈의 이방인으로 부터 영향을 꽤나 받았다고 생각한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의 여친이 머물던 요양원….기사단장 이야기에서 친구의 아부지,,화가가 머물다 돌아가신 요양원..그리고 이방인 뫼르소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양로원….이 세 곳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보이건 보이지 않건…그리도 더욱 중요한 것은 반항적인 삶..기사단장죽이기는 과혹한 현실에 대한 반항적인 삶을 반항적이지 않은 문체로 다룬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얘기가 몇 가지 더 있는데, 나중에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