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팔러 찾아온 형

제목만 보면 그 형을 무시하는 듯한 표현인데 무시라기 보다는 그냥 사실의 적시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보험을 팔러 왔었다.

한참 오래전이다. 20015~16년 정도로 기억이 되는데, 예전 하숙집에서 방을 같이 사용하던 형이 졸업 이후로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일단 한 번 만나자고 했다. 느낌이 조금 이상하긴했는데, 한때 같이 방을 같이 사용하던 형이고, 나도 그 형 소식이 조금 궁금하기도 해서 그러기로 했다. 만날 장소는 송파구청 근처 먹자골목..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인데..그러기로 했다.

그 형은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형이었는데, 1차를 한 번 합격하고 그 뒤로는 합격소식이 없이 그냥 공부만하던 형이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둘이 어찌나 좋아했던지..매일 밤 마다 전화통을 붙들고 통화하다 잠이 들 지경이었다. 017 커플 요금제? 커플 사이에는 통화가 무료였다.

조금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장소로 잡은 곳은 길가 그리 좁지 않은 길에 자리잡은 꽤나 넓은 식당이었는데 파라솔이 쳐진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을 인도와 길가까지 내다놓고 그렇게 대량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평일 오후 6시 조금 넘어서 인지 출퇴근 인파와 자동차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하늘의 비둘기 등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소란스럼운 곳이었다.

형이 왔다. 근데 행색이 조금 머랄까..초라해보였다.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 머리에 기름기가 조금 감돌고 어쩌면 포마드를 발랐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정돈된 느낌은 아닌…. 서툰 다림질로 반들반들해진 화학섬유가 섞인 양복바지를 입고 그 위에 같은 검은색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한 손에는 서류가방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리 고급품으로는 보이지 않고 조금 낡은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이 든 사실은..보험판매원의 행색치고는 좀 초라해 보였다. 혹은 그 빤딱빤딱한 종신보험 영업사원의 전형적인 모급은 아니였다.

상투적인 인사를 하고, 형은 삼겹살을 시켰다. 음식이 나왔는데…뭔가 꺠끗해 보이지 않는 그냥 조금 서민적인 냄새가 나는 모양새였고 고기는 냉동상태였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뭔가 내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선입견이라기 보다는 그냥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묘사중이었다.. 나는 냉삼도 잘 먹고 길거리의 식당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고기를 두 점 먹었을까…보험 얘기를 꺼냈다. 나는 나름 궁금한 것이 많아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아주 간단명료하게만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답을 하는 내내 뭔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보험 얘기를 꺼냈다. 이내 가방에서 서류가 나오고 나에게 전달 되고, 작성해서 달라는 것이 요지였는데. 보험상품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자 나는 형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설명은 그만하시라 하고, 서류는 사인해서 내일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외무고시는 더 이상 준비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졸업하고 십 수년이 지난 시점이니. 여자친구는 어떤지 물었는데. 정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 사람이랑 결혼을 했는지 아님 헤어졌는지 등등…그런데 느낌은 최근까지 어떤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혼을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 가서 고민을 하다, 그냥 더 이상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기로 했다. 보험 서류는 찢어서 버렸다. 다음 날 계속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언제적 친한 친구녀석 한 명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 만나서 치킨 한 마리에 소주 한 병 두고, 맨날 옛날 얘기 뜯어 먹으면서 즐거운 척 하는 것이 역겁다는 것이다. 어쩌면 좀 잘 나간다고 우쭐해하는, 친구들을 무시하는 생각과 행동일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게 그 친구의 요점이었다. 옛날 생각만으로 오래 전 친구들은 만나는 것은 거의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경험이라고 했다.

그 친구의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말한 내용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긴하나. 오래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동일했다. 나는 형의 처지가 어떤지 현재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궁금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보험도 팔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처음 인사를 나누고 나서 이어 진행되는 과정이 조금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어쩌면 형 입장에서는 그리 별 다른, 특이한 상황은 아니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나에게는 그냥 보험 팔러 온 형…그 자체였다.

내 전화번호는 , 후배녀석 한 명이, 나이는 나보다 2살 많다. 자기에게 연락이 온 것을 내 핑계를 대면서 나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하고, 그렇게 전화번호가 건네졌던 모양이다. 내 입장에서,,보험이 싫으면 그냥 자기만 싫어하지..왜 나를 끌고 들어가는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군대생활을 포함해서..보험의 기억은 꽤나 있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와서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다..금융컨설턴트라고 했다. 난 뭐..나에게 좋은 얘기해주려나 보다..하고 그렇게 시간을 잡고 회사 앞에서 만났다. 난 그 당시 사회초년생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었다. 뉴욕생명 보험판매원 이었다. 화가 났다..그러나 웃으면서 대했다. 헤어질 때 친구 연락처를 하나 알려 달라고 해서,,,어떨결에 나도 친구 연락처를 알려주고 말았다. 그 친구한테 정말 미안하다.

내가 과장 정도 달았을 때니…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때 였는데, 당시 직장이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근처였다. 길을 가다 군대시절 소대장을 만났다. 좀 어리버리 소대장이었는데..내가 소초 상황병이라 같이 얘기할 기회는 많았고,, 군생활 당시나는 21살이고,,그는 25-6 정도 였는데….당시에는 한참 나보다 손윗 처럼 보였다. 다시 돌아와서, 소대장을 만났는데, 다음에 시간나면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그러기로 했다.

이 사람은 보험업에 종사를 하는데 ING 보험을 팔지는 않고 사람을 리쿠리딩해서 그 사람의 인맥에 보험을 파는 영업소 부소장이었다..그 당시 흔히들 보험영업사원들이 자랑스레 내미는 명함에는 밀리언달라테이블 로고가 찍혀있었다. 나는 다니던 직장에 꽤나 만족을 하고 있었고,,,사실 내가 당시 그 보다 더 벌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중히 거절했는데,,그 뒤로도 몇 번이고 연락이 오고 또 길을 가다가 만나고…

한 번은 제대로 팔렸다. 프루덴셜 영업소장에게…이전 직장에서 상사로 같이 근무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 선배가 프루덴셜에서 근무하는데 인사담당자를 찾는다…그러니 한 번 만나서 얘기 들어바라..결론은 프루덴셜 영업소장이 보험판매원 리쿠리팅 하는 것 이었는데..일종의 날 속인 셈이다..그 이후론 안 본다.

보험을 팔 수 있다. 그리고 보험이 나쁜 상품은 아니다. 그런데 왜 꼭 종신보험을 파나? 그리고 왜 꼭 만나면 덫에 걸렸다는 느낌을 주나? 니들 돈도 소중하지만 내 돈도 소중하다. 사람이 돈으로 보이지?

매일 자전거 23km

타고 다니던 팰리세이드를 반납했다. 그래도 출퇴근은 해야겠기에, 생각을 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편도가 11km 조금 넘으니, 왕복은 23킬로이다 매일 자전걸르 23킬로 타야하는 것이다. 이전에도 주중에 간혹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약 50분 정도 타곤 했는데,,아마 10키로 정도 남짓되는 거리였다. 이제는 매일 타기 싫어도 23km를 타야한다. 조금은 부담스럽다.

첫 날은 예상했던대로 힘이 들었다 힘이 조금 부쳤다. 땀도 많이 났고, 목도 아프고 손이 시리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 이걸 계속할 수가 있을까? 낙담의 순간이다. 첫 날이라고 하니,,점점 뭔가 좋아지고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해 나갈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약 3주 정도,,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에 23km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을 하고 있다, 타고 가다 보면 갈증이 나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거나 무릎에 고장이 날 것 같은 느낌도 드는 경우도 있다.

아침에 11km, 그리고 퇴근하면서 우체국까지 약 2km 그리고 우체국에서 집까지 약 13km..총 26km. 언젠가 자전거로 블라디보스톡에서 베를린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하루에 100km는 타야되지 않을까..그렇게 짐작을 한 적이 있다. 지금 타는 거리가 하루 25km 남짓인데, 사실 힘들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그런데 몇 달 동안을 매일 100km가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든다.

어쩌면 매일 25km을 한 1년 정도 타고 나면, 하루 100km가 그리 먼 거리로 안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가정이다. 일단 100km/일은 짧은 거리가 아니고, 그걸 몇 달 동안 계속하는 건은 또 다른 챌린지다.

그냥 벌을 받는 느낌으로 타기로 했다. 매일 매일 자전거 타이어가 닳을 것이고, 언제가는 타이어를 교체를 해야할 것이다. 난 타이어 교체의 순가니 좋다. 아직까지 주행 거리가 많아져서 타이어가 닳아 교환을 한 적은 없는데, 지금은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는 모르겠으나..그냥 해보자.. 나아가보자. 너는 벌을 받고 있다.

자전거는 몇 달 전에 당근에서 3만원을 주고 구입해서, 프레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손수 교체한..그 뒤로 자전거에 맛을 들여 이제는 자전거가 5대가 되었다. 모두 비싼 자전거는 아니고. 그냥 내가 고치고 닦고 조이고..그렇게 만든 자전거..

인생라면?

기억에 남는,,맛나게 먹은 라면은 4가지 였다. 아니 4가지 상황에서 먹은 라면이다. 사실 라면 자체가 맛이 나서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는,라면과 어우러진 그 상황이나 분위기가 라면의 기억을 더욱 강렬하게 한다.

우리집 라면, 602호 쌍둥이. 초등학교 4-6학년 사이였던 것 같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쌍둥이 형들이 있었는데, 그 집은 그 쌍둥이 외에도 위로 누나가 너댓 명 되는 꽤나 큰 가족이었다. 점심시간 때가 되면 라면을 끓였다. 기억은 그런데. 주중에도 그런지 아니면 주말에만 그런지는 가물가물한데…방학 때도 점심시간에는 라면을 끓였다는 기억이 있으니.. 주중 주말 상관없이 점심으로는 라면을 먹는 집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생활이 좀 곤란할 수도 있는 집이었다고 본다. 우리집 라면 한 박스가 마루에 항상 놓여져 있었고, 점심이면 누나들이 먼저 끓이던지..아님 형들이 먼저 끓이던지..항상 라면을 끓여서 김치랑 먹었다. 나도 같이 끼여 자주 먹었는데..난 그 라면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졸라 우리집 라면 1박스를 샀다. 꼭 박스채로 사서 먹어야 왠지 그 라면 맛이 날 것 같았다..4천몇 백원을 줬던 것 같은데..라면을 끓여 먹는데 그 맛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한 동안 나의 최애 라면은 우리집 라면 이었다.

빙그레가 만든 우리집 라면

캐나다 애드먼튼의 기숙사 신라면

University of Alberta Lister Hall(기숙사) 4층 공용부엌의 전자렌지에서 요리되는 라면…4층 3개윙 복도에 라면 냄새가 가득 찬다. 자주 냄새를 맡다 보면 모를 수 있는데.. 라면의 냄새가 전혀 없는 혹은 없었던 곳에서 라면을 끊이면 그 냄새는 생각보다 강렬하다.. 좋은 냄새일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분명한 것으로 그 냄새가 강렬하고 꽤나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는 것.

머랄까..김치를 비롯한 한식을 오랫동안 먹지 않은 사람이 김치를 먹는 한국사람 집에 가면 집 전체에 베에있는 한식양념과 김치 냄새에 조금 당황을 할 수 있는 것…태국을 가서 공항 밖으로 나오면 도시 공기에 베어있는 냄새? 뭐 그 정도의 느낌.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 여자애가 와서 라면 냄새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배가 고프면 타파 플라스틱 용기에 라면과 물을 넣고 전자렌지에 라면을 돌렸다.

군대시절 삼양라면..삼양라면인지 신라면인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보급으로 나오던 라면은 삼양라면 이고, 별도로 할매집에서 사온 라면은 신라면 이었다고 본다. 신라면은 빨간색 검은글자 라면봉지는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신라면이 군대 보급품으로 나온 것 같지는 않다. 근무를 갔다 오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그 동안 라면 뽀글이를 준비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플라스틱 봉지에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짓은 못하겠으나,,그때는 석면 스레트에 삼겹살도 구워 맛나게 먹던 시절이었다.

하숙집의 신라면

같은과 한 학번 선배랑,,서반아어과 선배랑 같이 먹었는데..내가 하숙집 방 옆에 딸린 부엌에서 끓였다. 같은과 선배형이 밤 10시가 조금 넘으면 라면 먹는 걸 좋아했는데..나도 맛있었다. 신라면….항상 뒷 정리는 내 몫이었는데 그게 그리 싫지가 않았던 기억이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좋아하던 형들이었고. 같이 라면을 먹으면서 나누던 얘기가 좋았다. 지금은 뭐들 하고 계실런지..

그 서반아어과 선배는 나이가 꽤 있었는데, 졸업하고 LG를 다니다 그만두고 다시 학교 앞으로 와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형이었다. 내가 받은 느낌은..LG를 다닌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듯 했고, 본인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그리고 준비하던 사법고시는 1차는 몇 번 패스를 했는데 그것도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축구를 좋아했고, 지금 생각하면 별로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하숙집에서 꽤나 나이가 많은 형들 중의 한 명 이었다. LG를 다닌 것은 그다지 별로 자랑할 정도는 아니고, 그만 두고 사법고시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 형은 세상의 이치를 먼저 알아버린 것이였을까?

i5 2400이면 충분한가?

메인 컴퓨터로 맥미니 M4를 사용하고 있다. 그 전에는 맥북프로 2012를 사용하다 처분했다.

언제부터인가 코딩이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유뷰트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어떨결에 파이썬으로 암호화폐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간혹 사용한다. 이걸 만들면서 느끼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코딩의 기술보다는 시장의 원리와 흐름을 읽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코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지만 어떤 지표를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매매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정말 어려웠다…어려운 것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그렇다고 코딩이란 신성한 일 자체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파이선으로, 챗지피티의 힘을 빌려 만든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많이 복잡해 보였는데, 자꾸 들여다 보고 고치기 시작하니 대충의 흐름을 알 수는 있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꽤나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이타를 보내고

데이타를 받고

그 데이타를 의미있는 데이타로 만들고

그것에 기반하여 매매요청을 하는 식이다.

그 의미있는 데이타로 만드는 과정이 사실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데, 예를 들면 일련의 행렬 데이타를 받고 그걸 의미있게 나열하고 계속적으로 실시간으로 받는 데이타를 행렬에 추가하고 그것으로 특정 지표지수를 만들어 내고 그 지표에따라 매매요청을 하는 식인데. 일단 매매 심볼별로 창을 하나씩 띄우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하면서 동시에 실시간 리소스 모니터링을 해봤는데, 어라…CPU점유율이 1%도 되지 않는다. 맥미니 M4이다…심볼을 여러개 추가해 창을 최대 20개까지 띄워봤다..그래도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의 CPU점유율이다.

나에겐 M4가 과분한 스펙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결론은 과분하다라고 결론을 일단 내린다. 말도 안되게 복잡한 계산을 동시에 20개의 심볼에 대해서 척척하고 있으니 말이다.집 어느 구석에서 오래전에 쳐박아 두었던 i5 2400 CPU를 탑재한 HP 데스크탑을 꺼내어 세팅을 해본다. 리눅스를 올리고. 만들었던 파이선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돌리는데..까딱없다. 20개를 돌려도 까딱없다. i5 2400이면 2010년에 그니깐 15년 전에 나온 CPU이다..아 우리가 오버스펙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구나.

구석에 쳐박혀 있던 오래된 컴퓨터가 척척 프로그램을 돌리니..애착이 간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이 기본적으로 있는데, 이건 실사용 측면에서도 고마우니 더욱 애칙이 간다. 그렇게 나의 세컨컴…아니 글 쓰는데는 퍼스트컴이 되었다.

i5 2400이면 충분하다.

저렇게 생긴 녀석이다. 애착이 가기 시작하니 업그레이드를 생각해 본다

1155소켓이라 i7 3770까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해 보인다. 업그레이드를 하면 그래픽 성능도 intel HD 2000에서 4000으로 올라간다. i7 3770l CPU가 이상하게도,,아마 업그레이드 수요가 많아서 그런듯 보인다. 아직까지도 비싼데?(3만원?) 비슷한 성능의 서버용 CPU인 XEON은 반값이다…Intel Xeon E3-1275 V2 @ 3.50GHz 요 녀석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벤치마킹 점수는 i5 2400보다 약 60%가 높다. ㅎㅎ 이 업그레이드 계획은 위의 글에 대한 강한 자기부정인가? 내가 늘 그렇지 머…ㅎㅎ

추가로, C++가 파이썬 보다 20~100배 정도 빠르다는데…실제로 1~1억까지의 숫자를 출력하는 코딩을해보니…파이썬이 약 90초, C++는 약 2초가 걸린다.다음 목표는 386이나 486컴터에서 쌩쌩 돌아가는 C++로 코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일종의 다운사이징 IN 컴터 생활..

매일 한 개의 글..

언젠가는 지켜지지 않음을 알지만 일단 시도해 본다.

매일 하나의 글을 써 볼려고 한다. 대학시절 이후로 연습을 하지 않아 오타가 자주 나는 키보드 자판도 다시 한 번 익힐 겸…

사랑이 그러하듯 이 스스로의 약속은 언제가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보겠다. 돌이켜 보며 난 늘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이게 나인 거다.

화이팅

사이트 글이 전부 날아가 버림

주말에 NAS 가지고 놀다, 갑자기 워드프레스를 지우고 새로 깔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일단 언인스톨을 했는데, 그만 그 동안 작성했던 글들이 모두 삭제되었다.급하게 php 들어가 데이터베이스 복구를 시도했으나…부질없었다..부질없음이야..